
어느 날 아침, 커피숍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가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한 직장인이 동료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냥 좀 부풀려서 보고한 거야. 회사 실적을 위해서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 순간 앨버트 반두라가 말한 ‘자기 면책(self-exoneration 또는 moral disengagement) 현상’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도덕적 나침반’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정직하게 산다” 같은 원칙들 말이지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원칙들이 어떤 순간에는 마치 안개처럼 흐려지고, 우리는 평소 자신이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행동들을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습이론의 주창자이자 현대 교육심리학 분야의 석학으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1925∼2021)는 일반 도덕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 더 우월하다고 믿는 고유한 도덕에 따라 행동할 때 자기 면책 현상이 일어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경우, 불의에 항거한다는 명목으로 정해진 규범을 초월해 법의 위반을 정당화합니다. 다시 말해, 나보다 열등한 사람들은 악으로 상정하고 자기 행동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합리화하는 식이지요. 마치 우리 마음속에 능숙한 변호사가 한 명 살고 있어서, 언제나 우리의 비윤리적 행동을 정당화할 논리를 찾아내는 것 같습니다.
가장 흔한 변명 중 하나는 ‘더 큰 선을 위해서’라는 논리입니다. 회사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우리는 평소 자신의 기준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을 거리낌 없이 합니다. 마치 개인의 도덕성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면 무엇이든 정당화될 수 있다는 듯.
또 다른 교묘한 방법은 언어의 포장입니다. ‘해고’를 ‘구조조정’이라고 부르고, ‘거짓말’을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표현합니다. 단어 하나만 바꿔도 같은 행동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언어는 참으로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때로는 비교의 논리도 등장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더 심하게 하는데, 이 정도면 나는 양반이지.” “나는 물건을 훔쳤지만, 적어도 살인은 하지 않았잖아." 상대적 윤리라는 것입니다. 절대적 기준에서는 잘못된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더 나쁜 행동과 비교하면 자신의 행동이 그리 나쁘지 않게 느껴집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도 다양합니다. “상사가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라는 식으로 자신의 행동이 타인의 지시 또는 구조적 요인 때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마치 본인이 상황의 희생자인 것처럼 말입니다. 일례로 중일전쟁 당시 만주의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을 했던 의사들을 들 수 있지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잔혹한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의사들은 종전 뒤에도 살아남아 아무런 책임은 물론 처벌도 받지 않고 일본 의학계의 주류로서 자리잡으며 잘못을 반복했습니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혈우병 약을 만들어 수많은 희생자를 낸 일본 녹십자병원 사건에서 그 병원을 만들고 키운 이들이 바로 731부대원 출신이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결과를 축소하거나 피해자를 비인간화하는 모습입니다.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에게 “원래 예민한 애야”, “별거 아닌 걸로 호들갑 떠네”라고 말하거나, 심지어 “저런 애들은 좀 당해봐야 정신 차린다고!”라며 피해자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들을 관찰하다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으로 복잡하고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합니다. 우리는 선한 사람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기꺼이 그 선함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여전히 선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본질일지도 모릅니다. 완전한 선도, 완전한 악도 아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는 존재.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존재.
반두라의 통찰이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도덕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이지요. 매 순간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것인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원칙을 지킬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도 거울을 보며 생각해 봅니다.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내 안의 변호사가 너무 유능하지는 않을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적 용기가 아닐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이중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조금씩 더 나은 선택을 해나가는 것뿐이겠지요. 완벽한 도덕적 존재가 되려고 하지 말고, 적어도 자신의 비도덕적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요?
옛말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비인부전 부재승덕(非人不傳 不才勝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격에 문제 있는 자에게 높은 벼슬이나 비장의 기술을 전수하지 말며,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참고한 자료: 한겨레신문, “일제 생체실험 주범들 여전히 의학계 주류라니…”(2014. 12. 16.), 오징어 게임 심리학(장프랑수아 마르미옹 지음),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조훈현 지음)>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이에나 저널리즘' 들어봤나요? (2) | 2025.07.27 |
|---|---|
| '투묘 효과'가 뭐지? (16) | 2025.07.24 |
|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 (6) | 2025.07.17 |
| 우리가 숏폼에 중독되는 이유 (12) | 2025.07.14 |
| 비만병(?)과 낙인 효과 (4) | 2025.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