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잘 알려진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전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이름을 붙여주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없고, 특정 단어를 부여해야만 감정 공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써왔던 단어가 세월의 흐름 속에 부정적인 의미가 강조되면서 다른 단어로 바뀐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정신분열병(精神分裂病)입니다. 1990년대 이후 병명에 쓰이는 ‘정신분열’이라는 단어가 환자에 대한 차별, 인권침해 및 질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형성해 원활한 치료와 복귀를 방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 각국의 의학계에서 병명을 개정하려는 언어 순화 운동이 진행되어, 일본에서는 2002년부터 ‘통합실조증(統合失調症)’으로, 홍콩과 대만에서는 ‘사각실조증(思覺失調症)’이라는 병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한정신분열증학회 이사장 권준수 교수의 주도로 병명 개칭 주장이 제기되어 2011년 3월, 대한의사협회가 ‘정신분열병 병명 개정 백서’를 발간하며 정신분열병을 폐지하고 ‘조현병(調絃病)’으로 개정하기로 확정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정부와 언론 등에서도 정신분열병 대신에 조현병으로 쓰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자어 조현(調絃)은 현악기에서 올바른 음을 내기 위해 줄을 조율하는 것을 뜻합니다. 뇌의 신경 구조가 제대로 조율되지 않아 혼란을 겪는 상태는 현악기의 줄이 너무 느슨하거나 팽팽해져 정확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비만’에 대해 용어를 순화하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비만은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서적·심리적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질환이지요. 특히 비만 환자들이 사회적 편견과 낙인으로 인해 겪는 심리적인 상처는 단순한 신체질환의 범주를 넘어섭니다.
가천대 길병원 김경곤 교수, 건양대병원 강지현 교수 연구팀은 전국 10개 병원에서 모집한 체질량지수(BMI) 30kg/m² 이상(고도비만에 해당) 성인 비만 여성 321명과 건강 의료 정보 제공 포털 ‘하이닥’에 소속된 의사 회원 171명을 대상으로 비만 관련 용어에 대한 주관적 인식과 적절성, 선호도를 조사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 결과, ‘비만병’과 ‘비만병 환자’라는 용어는 비만 여성과 의료진 모두에게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면 ‘건강 체중 초과’, ‘체질량지수가 높은 사람’과 같은 표현은 낙인감을 줄여주는 긍정적인 용어로 평가됐지요.
실제 개방형 질문을 통해 긍정적으로 평가된 용어를 선택한 이유를 살펴본 결과, 비만 여성과 의료진 모두 ‘일반적이며 무난한 건강 관련 용어’, ‘체중 및 건강 상태 개선 가능성을 강조하는 표현’, ‘부정적인 뉘앙스를 최소화한 표현’을 주요 이유로 들었습니다. 반면 ‘비만병’이라는 표현은 ‘병으로 낙인찍히는 느낌이 불쾌하다’는 답변이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강지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의료진이 무심코 사용하는 비만 관련 용어와 표현이 환자에게 불필요한 낙인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확인한 첫 사례”라며 “용어 하나만 달라져도 환자에게는 비만에 대한 낙인감을 줄이고, 치료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낙인 효과(烙印效果, stigma effect)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딱지를 붙이면, 그 딱지가 그들의 행동이나 정체성에 영향을 미쳐 실제로 부정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는 사회심리학, 범죄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는 개념이지요.
강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다양한 비만 관련 용어의 인식 차이를 확인하고 후속 논의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데 의의가 있으며, 앞으로 더 다양한 연령과 집단을 대상으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며 “단순히 용어를 바꾼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낙인을 해소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효과적인 소통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참고한 자료: 나무위키, 의학신문 “‘비만병’ 용어에 여성‧의료진 거부감…‘건강 체중 초과’로 변경 필요”(2025.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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