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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읽씹과 안읽씹, 그 미묘한 의미 차이를 찾아서

by 빅용가리2 2025. 7. 9.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많은 TV 프로그램에서 따라 했던, 그리고 아직까지도 가끔 쓰이는 ‘이가탄’ 광고 영상에서 나온 가장 대표적인 유행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eH86klRbME

 

이 광고에서 씹는 것은 말그대로 음식물을 씹는 행위를 말하는데, 요즘에는 모른체 한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밥도 아닌데 왜 뜸을 들이니. 말을 거는데 대답이 없는데 왜…

(중략) 내 톡 왜 씹어(씹어 씹어). 읽은 거 다 아는데 씹어(씹어 씹어). 답장도 못 할 만큼 바뻐(바뻐 바뻐). 핸드폰 달고 살잖아. 이제는 안 읽고 씹어(씹어 씹어). 안읽씹이 훨씬 더 나뻐(나뻐 나뻐 진짜 나뻐)”

 

트로트 가수 장민호의 디지털 싱글 ‘읽씹 안읽씹’의 가사 중 일부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GYqAbBWv1w

 

 

‘읽씹’은 읽고 씹다의 줄임말로 메시지를 읽고도 답장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안읽씹’은 안 읽고 씹다의 준말로 읽지도 않고 답장도 안 하는 것을 뜻합니다. 둘 다 카톡이나 문자에서 상대방의 메시지 확인 여부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기능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말이지요.

메시지를 보낸 지 한참 지났지만 답장이 없다. 읽으면 읽은 대로, 안 읽으면 안 읽은 대로, 그저 묵묵부답이니 기다리는 사람만 속이 탑니다. 오죽하면 저런 노래가 다 나왔을까요. “왜 대답이 없냐”고 물으면 그들도 할 말은 많다고 합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불편해서, 싫어서, 귀찮아서, 무서워서…”. 그래서 답장하지 않는 걸로 답장을 대신하지요.

 

모든 상황에 읽씹과 안읽씹이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보통 읽씹과 안읽씹은 무언가 묻거나 요구하는 등 대답이 필요한 메시지를 보냈을 때 대답이 없는 것을 뜻하지요. 상호 합의 또는 암묵적 합의 아래 대화가 끝나서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걸 ‘읽씹했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카톡을 쓰다 보면 한 번쯤 읽씹이나 안읽씹을 경험하기 마련입니다. 가족, 연인, 친구는 물론, 대학교 조별 과제 대화방, 회사 단톡방 등에서도 빈번합니다. 어제 읽씹·안읽씹을 당한 사람이 내일은 읽씹·안읽씹을 하는 인간이 되기도 하지요.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메신저로 대화하면 표정이 안 보이고 바로 대답할 필요도 없다”며 “누군가에겐 분명하게 거절 의사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게 장점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답(不答)도 나름대로 대답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상황을 말하는 것, 둘째는 생각·감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첫째 상황은 답장할 여유조차가 없음을 뜻하지요. 읽었다면 읽을 시간만 있었고, 읽지 않았다면 읽을 시간도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 경우 대개 일회성이거나 답장의 주기가 규칙적으로 불규칙합니다. 바쁘지 않은 시간엔 늘 ‘칼답’이지만, 바쁠 때는 읽씹이나 안읽씹이 많습니다.

 

지나치게 자주 또는 매번 특정 상황에서만 선택적으로 대답이 없다면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대답을 ‘못’했거나,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받은 메시지에 기분이 상해서 ‘안’ 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과거에 대화를 이어갔을 때 불편했던 경험도 대답을 피하는 이유가 됩니다. 대답하지 않는 게 대답하는 것보다 강한 의사 표현인 셈입니다.

 

여기에 예외도 있습니다. 바쁘지 않고 답장도 보내고 싶은데 일부러 답장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의도된 대답 지연, 바로 소위 ‘밀당(밀고 당기기)’입니다.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이 더 궁금해하고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관계에서 갑의 위치가 되고자 할 때 이같은 방법을 자주 씁니다. 임명호 교수는 “호기심은 예측 불가능할 때 더 커지는 법이다”며 “상대방 마음을 알고 싶을 때 일부러 침묵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읽씹과 안읽씹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나쁠까요?

정답을 먼저 얘기하면, 단기적으론 읽씹, 장기적으론 안읽씹이 더 나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읽은 뒤 답을 안 하는 것과 읽지도 않고 답도 안 하는 건 분명 다릅니다. 고의라는 전제 아래, 읽씹은 회피보다 거부의 의미가 강하지요. “읽고도 답이 없는 게 내 답”이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겁니다. 반면 안읽씹은 회피의 뜻이 함께 담겨있습니다. 오히려 회피 의도가 더 강할 수도 있지요. 거절을 어려워하는 사람, 싫은 말 하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수용도 거부도 아닌 중립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부든 회피든 메시지를 보낸 입장에서는 답장을 받지 못하면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무시·거절당했다는 생각도 강해집니다. 메신저 특성상 답신 외에 어떤 방법으로도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기에 답답한 마음 역시 커져만 갑니다(전화를 거는 방법도 있지만 좀처럼 쓰기가 거시기 하지요).

 

읽씹과 안읽씹 중 상대방이 더 기분 나쁘게 느끼는 것은 뭘까요?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각자의 사연이 있고 감정이 있다”며 “그래도 골라야 한다면 단기적으론 읽씹, 장기적으론 안읽씹이다. 안읽씹의 경우 당장은 괜찮아도, 대답 없는 시간이 길어지면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상적인 카톡이나 문자에는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해주는 게 맞습니다. 메시지에 문제가 없음에도 오랜 기간 답장을 받지 못하면 오해와 분노만 쌓입니다. 대답이 없는 게 대답이라는 것도 본인 생각일 뿐이지요. 상대방이 곡해(曲解)하면 더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잦은 읽씹·안읽씹을 상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다수에게 자주 읽씹·안읽씹을 당한다면 자신의 대화방식을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대화체가 물음표로 끝을 맺진 않는지, 빨리 답을 듣기 위해 매번 상대방을 재촉하진 않는지, 불편한 질문을 서슴없이 하거나 지나치게 관여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진 않는지 등을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동귀 교수는 “자신이 자유롭게 메시지를 보냈으면, 상대에게도 자유롭게 답할 자유를 줘야 한다”며 “상대방의 대화방식, 특성 등을 이해하고, 대답이 없으면 다른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참고한 자료: 헬스조선 “'읽씹' vs '안읽씹', 뭐가 더 나쁠까?”(2023.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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