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글이 지난 3월 9일부터 티스토리 블로그를 시작한 뒤 100번째를 맞는 글이네요. ^^
지난 9월 지역의 조찬 포럼에서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복합유연성'을 한국인이 가진 독특한 심리적 특성의 하나로 꼽았습니다. 허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복합유연성은 ‘양극적이고 직선적 관계보다는 순환적이고 복합적 관계로 인식하는 경향’입니다.
복합유연성이란 서로 모순되거나 상충하는 것들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전환하는 능력입니다. 쉽게 말해,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심리적 유연성이죠.
복합유연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조선 시대 명재상 황희(黃喜, 1363~1452) 정승의 일화를 여러분들도 아실 겁니다.
황희 정승의 집에서 일하는 두 하녀가 어느 날 서로 다투다가 황희 정승을 찾아와 각자의 억울함과 옳음을 주장했습니다.
먼저 온 하녀가 자신의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자, 황희 정승은 "네 말이 옳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잠시 후 다른 하녀가 와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자, 황희 정승은 다시 "네 말도 옳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그의 조카가 "어찌 옳고 그름을 가려주지 않고 모두 옳다고만 하십니까?"라고 묻자, 황희 정승은 조카에게도 "네 말도 옳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복합유연성의 구체적인 예를 좀 더 들어보면,
○ 집단주의+개인주의: 한국인은 가족이나 조직을 위해서는 희생하면서도(집단주의), 동시에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도 적극적입니다(개인주의).
○ 보수+진보: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면서도 일상생활에서는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많습니다.
○ 전통+현대: 유교적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동시에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받아들입니다.
○ 빨리빨리+완벽주의: 빠른 속도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완벽함을 요구하는 모순된 태도

허 교수는 이런 특성이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짧은 시간에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으면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가치가 충돌하고 공존하는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이런 심리적 유연성이 발달했다는 것이죠.
이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창의성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관성 부족이나 혼란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참고한 자료: 『어쩌다 한국인』(허태균 지음)>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파에톤 콤플렉스'가 뭐지? (0) | 2025.11.20 |
|---|---|
| 늦가을을 견디기 힘든 사람들 (0) | 2025.11.17 |
| 마음의 저울과 인간의 탐욕 (1) | 2025.11.10 |
| 멈출 수 없는 습관, '스크롤 중독'에 대하여 (0) | 2025.11.08 |
| 샴쌍둥이 같은 번아웃과 보어아웃 (0) | 2025.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