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로몬 왕(King Solomon)이 실존 인물인지의 여부는 역사학계와 고고학계에서 매우 흥미롭고도 치열한 논쟁거리입니다. 자료를 찾아본 결과, 성경 속 묘사처럼 화려한 대제국을 다스린 인물로서의 실존은 불확실하지만, 기원전 10세기경 이스라엘 지역을 다스렸던 역사적 통치자였을 가능성은 높다고 보여집니다.
성경에서 솔로몬왕은 전설적인 지혜의 왕으로 묘사됩니다. 유명한 이야기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친모 분쟁’입니다. 어느 날 두 여인이 왕을 찾아와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친모라고 주장했습니다. 두 사람의 의견을 들은 솔로몬왕은 아기를 둘로 갈라 한쪽씩 가지라고 권했습니다. 한 여인이 그럴 바에는 상대방 여인에게 아기를 주라고 얘기하자, 솔로몬은 그 여인을 친모로 판결하는 지혜를 보여주었습니다. 친모라면 자기가 낳은 아기가 비참하게 양분, 즉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남의 자식으로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지요.
하지만 운명의 얄궂은 장난일까요, 솔로몬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그다지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호색한(好色漢)에 근시안적이던 솔로몬은 신앙이 제각각인 수백 명과 결혼했고, 아내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호화로운 신전과 사당을 지어 그녀들이 각자의 신을 섬길 수 있게 했지요. 이 때문에 솔로몬은 정작 자신의 신과 자신이 다스리던 민족과는 멀어졌고, 결국 그와 왕국은 기원전 930년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솔로몬의 역설(Solomon's paradox)’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나왔습니다. 이 용어는 한마디로 ‘남의 문제는 명쾌하게 해결해 주면서, 정작 자신의 문제는 제대로 풀지 못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캐나다 워털루대학의 사회심리학자 이고르 그로스먼(Igor Grossmann) 교수가 이름 붙였습니다.
그로스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지혜로운 판단력을 결정짓는 핵심은 '자기 거리두기(self-distancing)'의 여부입니다. 타인의 문제일 경우, 우리는 관찰자 입장이 됩니다. 감정적으로 덜 얽매여 있으며, 객관적이고 넓은 시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반면, 나의 문제일 때는 감정이 앞서고 시야가 좁아집니다. '터널 시야(tunnel vision)' 현상이 발생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불안, 분노, 욕망에 휘둘리게 됩니다. 성경 마태복음 7장 3절의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커다란 통나무)는 깨닫지 못하느냐”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요.
우리 보통사람도 벗어날 수 없는 ‘솔로몬의 역설’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현명한 결정을 내리려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첫째 방법은 ‘3인칭 시점’으로 생각하기입니다. '나는 왜 이럴까?' 대신 '철수(자신의 이름)는 왜 이런 기분을 느낄까?'라고 생각해 보세요.
둘째는 친구의 고민이라고 가정하기입니다. 지금 내가 겪는 이 상황이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내가 어떤 조언을 해줄지 상상해보는 것입니다.
셋째, 미래의 시점에서 바라보기입니다. 1년 뒤, 또는 10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선택을 하라고 말할지 고민해 보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역설을 생각하면 지혜는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거리의 문제로 보입니다.
<참고한 자료: 『채터, 당신 안의 훼방꾼』(이선 크로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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