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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왜 음모론에 빠질까?

by 빅용가리2 2025. 5. 12.

 

1997년 개봉작 ‘컨스피러시(Conspiracy Theory)’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음모론(陰謀論이며, 陰毛論이 아닙니다^^) 소재의 스릴러로, 리처드 도너 감독이 연출하고 당대의 스타인 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주인공 제리 플레처(멜 깁슨)는 뉴욕의 택시 운전사로, 일상적으로 승객들에게 각종 음모론을 늘어놓는 인물입니다. 그는 정부와 사회의 여러 사건들이 거대한 음모에 의해 조작되고 있다고 믿으며, 이를 주변에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제리는 법무부 소속 변호사 앨리스 서튼(줄리아 로버츠)에게 스토커 수준의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앨리스는 아버지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 중이고, 제리는 그녀에게 여러 음모론적 증거를 제시하며 접근합니다.

어느 날, 제리는 자신이 실제로 거대한 음모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CIA와 FBI 등 각종 정부기관이 얽힌 미궁 속에서 앨리스와 같이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제리의 잊고 싶은 과거와 그가 왜 이런 음모론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앨리스와의 관계, 음모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그려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I-dJmPLKk0

 

왜 사람들은 음모론에 빠져들까요? 2016년 12월, 미국인 청년 에드거 웰치는 소총을 들고 워싱턴DC에 있는 피자 가게 ‘코멧 핑퐁’에 침입했습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를 구세주로 신봉하는 ‘큐어넌(QAnon, Q를 추종하는 익명의 지지자들anonymous을 가리키며 Q가 누구인지 신원이 드러난 적은 없음)이었습니다. 웰치는 어떤 증거도 없이 힐러리 클린턴, 조 바이든, 버락 오바마, 비욘세, 레이디 가가, 톰 행크스 등 유명인이 피자집 지하에서 악마를 숭배하는 의식을 펼치고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극악무도한 성도착자를 처단하겠다는 정의로운 마음으로 피자 가게에 들어가 총을 난사했습니다. 그러나 코멧 핑퐁에는 작은 식자재 창고만 있을 뿐 지하실은 없었고, 당연히 사탄 숭배자나 소아성애자도 없었지요.

극단화한 큐어넌 추종자들은 뉴욕에서 범죄집단 보스를 딥스테이트 (deep state, 전통적이고 안정된 기득권 집단, 비선秘線의 국가)의 끄나풀이라며 살해하고, 후버댐에 장갑차를 몰고가 경찰과 대치하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FBI는 큐어넌이 국내 테러를 저지른 잠재 위협세력이란 문서를 공개했지만, 트럼프는 큐어넌을 모른다면서도 그들의 글은 퍼날랐습니다.

 

그 사이 큐어넌은 필요하면 새로운 음모론을 수용해 기존 주장에 살을 붙여 갔습니다. 트럼프 재선 선거운동 기간에는 딥스테이트와 소아성애자 소탕을 위한 구세주로 트럼프가 선택됐다는, 황당한 트럼프 지지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큐어넌은 코로나19와 백신 음모론도 만들어 냈지요. 딥스테이트가 만든 생물병기가 코로나19이고, 추적기능이 있는 백신을 맞으면 노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트럼프의 지원, 코로나 대유행과 인터넷 사용시간 급증이란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큐어넌에 속한 페이스북(현재 메타) 회원만 3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사람들이 음모론에 빠지는 이유를 탐색한 <음모론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발간됐습니다. 저자인 마이클 셔머는 사이비 과학, 미신 등에 맞서는 과학적 회의주의 운동을 펼치고 있는 과학 저술가입니다. 국내에서도 1991년에 한국어판으로 발간되는 과학잡지 ‘스켑틱(Skeptic)’을 창간했지요.

 

음모론의 역사는 꽤 깁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미국 정부가 관여했다’는 음모론부터 ‘아폴로 우주선은 달에 착륙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UFO의 존재를 숨기고 있다’, ‘9·11 테러는 미국 정부가 벌인 자작극이다’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저자는 음모론을 믿는 자들이 덜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라고 말합니다. 마이클 셔머는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 이유를 세 가지 모델로 설명합니다. 대리 음모주의, 부족 음모주의, 건설적 음모주의이지요.

첫째, 대리 음모주의(proxy conspiracism)

정부, 권력, 권위 있는 기관에 대한 불신이 크면, 공식 설명을 믿지 않고 대안적 설명(음모론)에 의존하게 됩니다.

실제로 과거에 정부나 기업이 저지른 비윤리적 행위(예: 매독 실험, 기업 스캔들 등)가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건에도 음모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둘째, 부족 음모주의(tribal conspiracism)

자신이 속한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집단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소속감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음모론을 받아들입니다.

집단 내에서는 음모론을 믿는 것이 충성심을 드러내는 신호가 되기도 합니다.

 

셋째, 건설적 음모주의(constructive conspiracism)

인간은 진화적으로 위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나뭇가지를 뱀으로 착각하고 도망가는 것이, 진짜 뱀을 놓치는 것보다 덜 위험하다는 심리가 음모론 신념의 근저에 있습니다.

 

저자는 음모론자들을 일단 대화로 상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기이한 음모론에 빠진 맹신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도 자신의 해법에 낙관하지는 않습니다. 음모론을 더욱 퍼뜨리기 좋은 환경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름의 논리를 갖춘 과거의 음모론과 달리 요즘 음모론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공포를 주입합니다.

 

<참고한 자료: 한국일보(2021. 1. 29.), 한국경제신문(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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