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국민 절반 울화통 안고 산다
2025년 5월 7일자 매일경제신문의 기사 제목입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건강재난 통합대응을 위한 교육연구단은 설문조사 업체인 케이스탯리서치를 통해 지난 4월 15∼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정신건강 증진 관련 조사 결과를 공개했는데요,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은 ‘장기적 울분 상태’라는 설문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 국민 10명 중 7명 정도는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는데, 공정에 대한 믿음이 낮을수록 울분 정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울분(鬱憤)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답답하고 분함. 또는 그런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억눌린 분노, 울화통으로 번역되는 ‘pent-up anger’이고요.
연구진이 자가측정 도구로 주요 감정과 정서 상태를 5점 척도로 측정한 결과 응답자들의 12.8%는 ‘높은 수준의 심각한 울분’(2.5점 이상)을 겪고 있었으며 이들을 포함한 54.9%는 울분의 고통이 지속되는 ‘장기적 울분 상태’(1.6점 이상)였습니다.
연구진이 2018년부터 동일한 척도로 시행해 온 울분 조사 결과 높은 수준의 심각한 울분 비율은 2018년(14.7%)보다는 낮았지만 지난해(9.3%)보다는 높았습니다. 심한 울분 비율은 30대에서는 17.4%였지만 60세 이상에서는 9.5%였습니다. 월 소득 200만 원 미만 집단에선 21.1%, 월 소득 1천만 원 이상 집단에서는 5.4%였습니다. 자신의 계층을 ‘하층’으로 인식하는 집단의 심한 울분 비율은 16.5%로 가장 높았지만 ‘상층’ 집단에서도 15.0%가 나왔습니다. ‘중간층’에서 9.2%로 비교적 낮았습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울분 수준은 공정에 대한 신념과 상관관계가 있었다. 공정성 신념이 높아질수록 울분 점수는 낮아졌는데, 일반적 공정 인식 점수가 평균보다 낮은 집단은 평균점 이상 집단보다 울분 정도가 높았습니다.
한국의 정치사회 사안별로 울분의 정도를 측정한 결과 ‘입법·사법·행정부의 비리나 잘못 은폐’로 울분을 느꼈다는 비율이 85.5%로 가장 높았고 이어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85.2%), ‘안전관리 부실로 초래된 의료·환경·사회 참사’(85.1%) 등이었습니다.
조사 대상 전체에게 ‘스트레스 경험 시 대처 방법’을 복수로 고르도록 했더니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구한다’가 39.2%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어 ‘혼자 참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가 38.1%였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구한다고 답한 비율은 15.2%에 불과했습니다.
이번 조사를 총괄한 유명순 교수는 울분과 공정성 관계 등에 대해 “사회 안전·안정성을 높게 유지하고, (사회적) 믿음을 굳건히 하는 것이 개인과 집단의 정신건강을 위하는 길”이라고 해석하며 “앞으로 의료적 노력은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 정신건강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심각한 외상적 사건을 경험한 후 발생하는 정신질환)와 비슷한 증세로 ‘외상 후 울분 장애(PTED: Post-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가 있습니다. 2003년 마이클 린덴(Michael Linden)이 PTSD 모델을 따라 작명한 것으로, 무력감을 동반한 분노라고 할 수 있는 울분(embitterment)에 초점을 맞춘 개념입니다.
과거 독일 통일 이후 동독인들에게 나타난 심리 상태가 PTED의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경제적으로는 더 잘살게 되었지만 서독인들에게서 무시를 당하는 ‘2등 국민’의 처지를 반복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에 분노와 화가 쌓여간 것입니다. 이와 관련,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창수는 “만약 감정에 상처를 주고 울분을 느끼게 하는 일을 경험했거나, 생각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화가 나고 스스로를 우울하고 불행하게 하는 생각이 반복된다면 울분 장애를 의심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울분이란 ‘장기간 부당하게 취급받아 왔기 때문에 증오 및 분노를 느끼게 하는 것’으로, 울분 장애 환자들이 주로 느끼는 감정은 울분·분노·무력감이다. 우울증과 불안증은 약물 치료와 정신심리 치료를 통해 많이 회복되지만, 울분은 훨씬 오래 지속되고 약으로도 잘 치료되지 않는다. 정신 치료와 지혜 치료 등으로 꾸준히 마음을 보듬어서 상처가 아물게 하고, 스스로의 마음이 그 과정에서 성숙하게 성장하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다. 울분을 그냥 놔두면 사회를 향한 폭력으로 폭발하기도 하고, 그 분노를 자신에게 돌리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특히 이번 세월호 참사처럼 천재지변이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사회 시스템으로 비극이 증폭될 경우 사회 구성원들은 집단적으로 불신과 분노를 느낀다. 불신이 누적되면 울분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몇 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언어의 온도’에는 다음과 같이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극지에 사는 이누이트들은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린다. 아니, 놓아준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언제까지? 분노의 감정이 스르륵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멀리 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긴 막대기를 하나 꽂아두고 온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얽히고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지도 모르는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을 그곳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이 얘기를 읽고는 내 분노가 훑고 지나간 스키드 마크를 되짚어 보았다. 가끔은 노여움을 놓아주지 못하고 붙잡으려 한 것 같아서, 그런 기억이 떠올라서 얼굴이 불그스레 달아올랐다.
그리고 어쩌면 활활 타오르던 분노는 애당초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잠시 빌려온 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라는 냉각기를 통과해서 화가 식는 게 아니라, 본래 분노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빌려온 것은 어차피 내 것이 아니므로 빨리 보내줘야 한다.
격한 감정이 날 망가트리지 않도록 마음속에 작은 문 하나쯤 열어 놓고 살아야겠다. 분노가 스스로 들락날락하도록, 내게서 쉬이 달아날 수 있도록.”
<참고한 자료: 생각과 착각(강준만 지음), 언어의 온도(이기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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