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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진짜 있구나? 에몬스 징크스

by 빅용가리2 2026. 3. 19.

2012년 런던 올림픽 시상식에 선 매튜 에몬스(맨 오른쪽), 맨 왼쪽은 은메달을 획득한 김종현

 

2004년 8월, 아테네 올림픽 사격장에서는 누가 봐도 금메달의 주인공이 정해진 듯한 순간이 펼쳐졌습니다. 미국 대표 선수 매튜 에몬스는 50미터 소총 3자세에서 줄곧 선두를 달리며 마지막 한 발만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1점만 맞혀도 우승이 확정되는 상황, 사격 명수인 그에게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과 TV 앞의 시청자들은 모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의 총알이 옆 레인 4번 선수의 과녁을 뚫고 지나간 것입니다. 0점 처리와 함께 금메달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믿기 힘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4년 후인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에서 에몬스는 또다시 같은 종목 결선 무대에 섰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선두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2위와 무려 4점 차이였습니다. 마지막 한 발에서 6.7점 이상이면 충분했고, 그것은 결코 어려운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한 발은 고작 4.4점을 기록했습니다. 1위에서 순식간에 4위로 떨어지며, 그는 또 한 번 금메달을 눈앞에서 잃고 말았습니다. 같은 종목, 같은 상황, 같은 결말을 지켜본 해설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때로는 놀라울 만큼 비슷한 역사가 존재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의 징크스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다시 4년 뒤 2012년 런던 올림픽 사격장에서 열린 같은 종목에서 에몬스는 결선 10발 중 9번째까지 2위를 지켜 은메달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점수 차가 크지 않은 소총 특성상 이변이 없다면 그대로 순위가 굳어지는 것으로 봐도 좋을 점수였지요. 하지만 마지막 10번째 사격에서 에몬스의 표적 판에 찍힌 숫자는 어이없게도 7.6점, 이날 결선 참가자 8명을 통틀어서 가장 낮은 점수였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김종현은 10번째 발을 침착하게 10.4점을 명중해 1.2점 차이로 은메달을 안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된 것일까요? 답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바로 지나친 긴장감 때문입니다. 금메달을 향한 간절한 열망이 오히려 몸과 마음을 옥죄어,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는 동작조차 흔들리게 만든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에몬스 징크스'라고 부릅니다. 성공을 너무 강하게 원할수록 긴장감이 커지고, 그 긴장감이 결정적인 순간의 실수를 불러온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의 경우 ‘초크(choke, 목 졸림, 질식)’ 현상이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이 현상은 압박이 심할 때 목이 졸리는 것 같은 부담을 느껴 수행 능력이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형편없이 떨어지는 것으로, 전문가도 일순 초보자 수준이 될 수 있습니다. 2015년 칠레 U-17(17세 이하) 월드컵 16강전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한국의 에이스 이승우의 승부차기 실축은 우승을 향한 열망과 긴장에서 온 에몬스 징크스가 화근이었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1EY970G_8wY

 

 

사실 에몬스 징크스는 올림픽 무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도 똑같은 패턴이 나타납니다. 이번엔 반드시 맞히겠다고 다짐했던 시험 문제에서 또다시 틀리거나, 무대에 오르기 전 완벽하게 외웠다고 생각한 대사가 조명 아래에 서는 순간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는 경험, 혹은 중요한 고객과의 미팅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울수록 오히려 실수가 잦아지는 상황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버드대 연구에서도 성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결과에 대한 지나친 걱정'을 꼽습니다. 잘 못할까 봐,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까 봐 하는 불안이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영국의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의 이야기가 좋은 힌트를 줍니다. 오늘날 위대한 과학자이자 탁월한 연설가로 기억되는 그도 처음에는 연단 공포증에 시달렸습니다. 연단에만 오르면 할 말을 잊고 혀가 꼬였으며, 매번 얼굴을 붉힌 채 내려와야 했습니다. 훌륭한 연설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오히려 독이 된 것입니다. 청중의 갈채를 받고 싶다는 욕심, 절대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긴장을 키웠고, 긴장은 다시 실수를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패러데이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긴장할 것 없어. 나는 강연을 하러 온 거야. 청중에게 진리를 전하러 온 것이고, 그들이 내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으로 충분해."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라." 이 말은 청중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자신의 작은 실수를 일일이 알아채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말이었습니다. 막히는 부분이 있어도 괜찮다는, 나름의 자기 격려였습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패러데이는 오로지 강연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청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니 몸도 자연스러워졌고,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훗날 사람들이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냥 자신을 충분히 보여주면 됩니다.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지나치게 긴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을 활짝 여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결국 에몬스 징크스를 극복하는 열쇠는 단 하나입니다.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 눈앞의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입니다. 침착하고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결과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덧붙이는 한 소절, 에몬스는 런던 올림픽 공식 기자회견에서 "결과적으로 메달을 땄으니 난 지지 않았다.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는 자체로 멋지지 않은가?"라고 여유 있게 말했습니다.

같은 사격 선수로 2004년 아테네에서 상심에 빠진 에몬스를 위로하다 부부가 된 아내 카트리나 에몬스(체코) 역시 남편의 동메달을 반겼지요. 카트리나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 엄청난 압박감과 그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극복해낸 남편이 자랑스럽다"며 "매튜는 올림픽에서 메달 두 개를 따내고 네 차례나 결선에 오른 선수다. 그를 실패한 선수로 기억하지 말아달라"고 말했습니다.

 

<참고한 자료: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쑤린 지음), KBS 뉴스 에몬스, 3회 연속 마지막 발징크스”, 2012. 8.7.,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2515449>

, 경북일보,“이승우와 에몬스 징크스”, 2015. 11. 5.,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9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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